김창균 칼럼]
"우리도 저승사자가 있었으면…"
YS 땐 최형우,
DJ 땐 권노갑 여론나쁜 公人에 "경질" 알려
현정부엔 惡役 맡을 이 없어 대통령-당사자가 결단을
▲ 김창균 정치부 차장김영삼 정부가 배를 띄운 지 한 달 만인 1993년 3월,
집권 민자당호(號)에 '재산공개'라는 거센 파도가 덮쳐 왔다.
여당의원 6명이 의원직 사퇴, 탈당, 또는 제명으로 떠밀려 갔고 5명은 공개경고,
10명은 비공개 경고를 받았다.
재산형성 과정에 문제가 있는 의원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배지를 떼라"는 사형선고를 전한 이는 최형우 사무총장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저승사자' 또는 '금부도사'였다.
최 총장은
그해 12월 내무장관이 되더니 내각에서 똑같은 악역을 맡았다.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에 몰리던 장관
한 명은 어느 날 최 장관으로부터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최 장관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식사만 했다.
마주 앉은 장관은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최 장관은 식당을 나서 승용차에 오르기 전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마, 이제 그만두소."
YS에게 최형우가 있었다면,
DJ에겐 권노갑이 있었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집권 민주당 의원들은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올까봐 전전긍긍했다.
권 고문이 공천 탈락 대상인 의원들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락을 받은 의원들은 얼굴이 굳어진 채 권 고문 사무실에 들어섰다가 1시간쯤 후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서곤 했다.
몇몇 의원들은 "왜 나냐"고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험한 배역을 누군가는 맡아야 했고,
김대중 정권에서 그 적임자는 권 고문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역시 '저승사자' 별칭을 얻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에 해당)이 총대를 메곤 했다.
여권 인사가 청와대의 뜻을 거슬러 대선 또는 총선에 출마하려 할 때,
그래서 선거 구도가 헝클어질 우려가 있을 때,
안기부장은 그 정치인을 호텔 밀실로 불러내 노란 서류봉투를 내밀곤 했다.
그 봉투 속엔 당사자의 치명적인 약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이명박 정권 관계자는
"우리도 저승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러날 수밖에 없는 여건인데도 눈치 없이 버티는 사람들 때문에 정권에
너무나 부담이 걸린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모질게 그만두라고 하지 못하는 성격이니,
누군가 대신 나서 줬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
그러나 저승사자가 갑자기 "짜잔"하고 등장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그 역을 맡아 소화해 낼 마땅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선을 치를 때만 해도 MB 정권의 핵심 실세가 될 서너 명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 출범과정과 총선을 거치면서 표(票)의 심판을 받았거나,
스스로 여론의 비판을 받는 대상이 돼 버렸다.
이들이 남에게 사약(賜藥)을 전하려 했다간
"너나 잘하세요"라는 영화대사가 되돌아올 판이다.
저승사자라는 조연의 뒷받침을 기대할 수 없다면,
주연들이 그 부담까지 떠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또는 당사자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결심이 쉽게 서지 않는다면 역대 정권에서 같은 주제로 상영됐던 전편(前篇) 영화를
돌려 보는 일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민들 마음속에선 이미 해임 절차가 종료됐는데,
대통령의 신임이 지속되는 갈등 구도는 종종 되풀이되곤 했다.
그때마다 당사자는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대통령은 "일 잘하는 사람을 마녀 사냥 때문에 자를 수는 없다"고 버티곤 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이제 그만두소"라는 심정이라면 결국 물러나게 된다.
그런 민심을 읽고 곧장 결심하느냐,
한두 달 더 끌어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당사자는 더 만신창이가 됐고,
국정(國政)의 상처도 깊어졌으며,
정권과 민심의 거리도 정비례해서 멀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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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 
) 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2008/11/12]
'꼴불견' 운전자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