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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환 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2004/01/16]
권위의 가면 벗고 내면의 귀 열자 2003/11/15 08:24

우리 삶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되는 선택도 있고, 때로는 환호작약하게 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선택하는 순간에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리츠 펄스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정하는 행위 자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다. 그것이 자신의 능동적인 가치관에 의한 선택일 때만이 그렇다.

10여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한 남자가 있었다. 새로 받은 보직이 도저히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남자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을 다 겪으면서 헤쳐나가는 것인데 아무 대책도 없이 그만두면 어쩔거냐"라고 읍소하는 아내, "멀쩡한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시 회사로 나가라"면서 펄쩍 뛰는 부모님.

그들에게 한 번 직장은 평생 직장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남들이 부러워 하는 대기업임에랴. 안정된 직장말고 다른 대안은 상상치 못할 일로 여기는 가족의 논리는 그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고민 따위를 아예 묵살하고 말았다.

식구들의 경직성은 그에게 '심리적인 폭력'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느낌과 '나는 정말 못난 가장'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무작정 가출했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는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노이로제를 'Should be'콤플렉스'라고 규정하였다. '반드시 ~이어야만 한다'는 일방적인 사고 방식이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류 대학을 나와야 성공한다' '감정을 절제해야 남자답다' '이혼은 곧 인생의 실패다' '모름지기 남자란 ~라야 한다' 따위 집단적인 무의식에 얽매일 때가 많다. 흔히 내생각, 내 가치관, 내 신념, 내 소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많은 부분이 사실은 부모의 생각, 친구의 생각, 상사의 생각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외적 기준에 강박적으로 우리를 맞추느라 자유를 누리는 기쁨을 모르고 살아간다.

성격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이에 대해 횡문화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사회의 원리 원칙과 객관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는 유형(사고형)과, 일 자체보다는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초점을 맞추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유형(감정형)의 비율이 미국인은 남자의 경우 5대5, 여자는 4대6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인은 남자의 경우 7대3, 여자의 경우 5대5로 남성쪽에 사고형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향을 보인다.

사고형의 특징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에는 관심이 많으나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치는 경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크다. 반면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일이든 인생이든 모험을 즐기기 보다는 대과(大過)없이 끝을 맺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욕구는 희생되기 마련이고 일과 인생의 다양성은 차단되고 만다. 현대 사회는 일 중심의 완벽주의자를 요구하기 때문에 사고형 인간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남성은 현대사회가 주는 압박감 외에도 남성 중심의 유교적 문화로 인해 지나친 책임감과 절제 의식을 지니고 있다.

남성을 위하는 줄 알았던 남성 중심의 우리 문화는 결국 이땅의 남자들을 should be콤플렉스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should be콤플렉스는 민주주의나 개인주의 사회에서보다는 교조주의/권의주의가 발달한 경직된 사회에서의 횡행하는 콤플렉스이다.

남자가 실직하면 여자가 나설 수도 있고, 남자가 울고 싶을 때는 여자가 안아 줄 수도 있다. 대기업에 취직 못해도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 결혼에 실패했으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권위적인 가면을 벗고 개인의 목소리를 포용할 만한 여유와 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집단적인 발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일도 드문 세상이다.



시사저널(9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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