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기성 세대들은 나와 내 자손들이 잘 살기 위해서 재산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세계의 사람들이 재산에 대한 욕심이 있고 이것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산이 왜 필요하고, 어느 정도 필요한가의 문제는 사회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나와 내 자손을 위해 재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문화가 아니라 농경사회 문화이다. 또한 개인주의 문화가 아니라 집단주의 문화이다.
이와 달리 서구 선진국 사회에서는 재산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재산은 후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안에 점유해서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유의 개념과 점유의 개념은 다르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재산관은 소유와 세습의 개념이 강하고 서구인의 그것은 점유와 당대의 개념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나라와 서구 선진사회의 재산관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는 개개인의 재산이 당사자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서구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월급(소득)만으로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만으로는 생활, 자녀교육이나 주택문제, 노후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재산으로 해결한다. 재산과 소득은 엄격히 다른다. 소득은 Flow의 개념이고, 재산은 Stock의 개념이다.
즉, 소득을 모은 것이 재산이다. 서구사회는 Flow의 사회, 소득사회, 연봉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은 연봉, 즉 월급만 많으면 윤택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구과 같은 Stock의 사회에서는 월급만 가지고 이들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서구사회에서는 어떻게 재산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가? 부모는 고등학교까지만 자녀의 교육비를 책임지는데 사회 교육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별도의 학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 대학교육의 경우, 유럽에서는 수업료를 내지 않으며, 미국에서는 장학제도가 널리 확대되어 있어서 부모가 학비를 들일 필요가 없다. 결혼 역시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본인의 문제이다.
서구인들은 임대주택 개념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택구입의 부담이 없다. 또한 노후 대책은 사회보장제도로 해결된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픈 노인은 자식이 아니라 지역사무소에서 보살펴 준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서구에서는 개인재산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유럽인들은 개인재산이 거의 없다. 임대주택에서 사회연금으로 노후를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중산층이라고 하여도 집 한 채를 남기는 것이 고작이고, 부유하다고 해도 총 재산이 10억원 안팎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인 재산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둘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저축으로 개인의 재산을 축적하지만 서구 선진국 사람들은 사회저축을 하여 사회의 재산을 축적한다는데에 있다.
개인저축이란 자기의 이름으로 된 땅, 아파트, 예금, 주식 등이다. 개개인이 자기의 소득을 자기의 이름으로 저축, 투자해서 개인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은 다르다. 사회저축이란 자기의 소득을 자기의 이름이 아닌 사회의 이름으로 저축하는 행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세금(정부저축), 대학이나 교회 등에 유산을 기부하는 것, 사회보장 분담금(의료보험, 연금보험 등), 기부금, 사회봉사 등의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기부금의 경우 전체 가계의 70~80%가 참여하며 양로원, 고아원, 골프장, 도서관 등에 액수에 상관없이 헌납한다. 물로 그들도 개인저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저축은 전체 저축의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와 반대로 80%가 개인저축이기 때문에 사회저축은 20%가 채 안 된다.
사회재산은 도로, 공원, 학교, 양로원이나 고아원, 공항 등을 신축하거나 연금제도, 의료보험 제도 등을 정착시키는 데에 쓰인다.
기본적으로 교통·환경문제의 해결이나 위락시설, 운동시설, 학교시설 구축 등에 필요한 자본을 사회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저축의 필요성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아직 사회 저축에 대한 인식이 올바로 서 있지 못하다.
과거 절대빈곤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식주의 해결이었다. 의식주는 개별재(個別財)다. 개별재란 개개인이 자기 저축만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여 선진국의 단계로 접어들면 의식주는 기본적 소유가 되어 더 이상 욕구로서의 의미가 없다.
이 때는 사회 공공재(公共財)에 대한 욕구가 문제시된다. 환경, 교통, 의료, 학교, 휴식공간, 노후문제 등이 해결과제가 된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서비스 개념으로서, 개별재가 아닌 공공재이기 때문에 개인저축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다.
따라서 소비행태가 개별재에서 사회 공공재로, 재화에서 서비스로 바뀌는, 이른바 ‘삶의 질 시대’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공공재에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저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난 날, 의식주의 해결이 시급한 당면 과제일 때는 한국식으로 재산을 모아도 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사회저축의 비율을 늘려야만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재산관이 변화해야 하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교육문제 해결에도 사회저축이 필요하다. 좋은 학교를 많이 짓기 위해서는 교육세를 더 많이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에 기부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교육의 중요성은 부르짖으면서도 사회저축은 기피한다. 그러한 그릇된 교육열이 개인과외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공공재를 개인저축으로 해결하려는 행위이다.
개인재산으로 자기 자식만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공교육을 통해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보다 많은 사교육비가 들더라도 자기 자식만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과외비 전부를 교육세로 환원하여 정부차원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문제는 벌써 오래 전에 해소되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인들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인들보다 높다. 그러나 일본의 삶의 질 문제, 예를 들어 교육수준, 환경수준, 교통수준 등은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한다.
즉 그들은 현금소득만 높을 뿐,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처럼 일본도 개인재산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국은 부동산 중심의 재산형성 사회이고 서구 선진국은 금융자산이나 주식 중심의 재산형성 사회라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부동산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만큼 ‘중산층 되기’에 확실한 공을 세우는 것도 없다.
한국인은 월급보다 주택 값의 등락에 의해 재산을 모은다. 그러나 선진국은 다르다. 한국은 부동산 자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8:2지만 서구 선진국은 그 반대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의 변화를 초래한다. 부동산값이 오르는 것 보다는 주식 값이 오르는 것이 사회의 발전을 촉진한다. 그것은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곧 기업의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한 점에서 주가 상승은 거품이라기 보다는 생산적인 작용을 한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없는 자’의 돈을 ‘있는 자’에게 주는 꼴이 되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동산의 거품으로 인한 폐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에 부동산 값이 10년 동안 4배가 올랐으나 90년대에 와서 다시 4배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피해는 막심했다.
구시대적인 경직성, 즉 부동산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90년대 이래 지금까지도 장기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IT기술에서 낙후되고 있는 것, 그리고 평생 고용제도와 같은 노동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개혁에 대한 추진력이 없는 것 등도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을 심화하고 있다.
넷째, 재산이 당대용이냐 세습용이냐 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재산은 당대 점유이용에 중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본적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들은 흔히 ‘유산 3분법’이라는 말을 쓴다.
세 가지란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 사회로 환원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모든 유산을 넘겨주고 있다. 영국 처칠 경은 자신의 대저택을 사회에 환원했다. 미국의 철도 재벌 밴더빌트의 재산 역시 밴더빌트 대학에 돌아갔고, 카네기, 록펠러, 스탠포드, 존스 홉킨스 등도 유수한사립 대학에 개인 재산을 기부했다.
미국 상위 1%의 부유층 가운데 상속으로 인해 이루어진 부는 10%밖에 안된다. 90%는 당대에 자신이 이룬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일종의 청교도 정신이다.
덴마크의 맥주 회사인 칼스버그 재단은 사업의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서구의 재산관은 한국과 다른가?
서구 사회는 재산에 의한 이익은 적고 보유과세가 더 많다. 외국은 종 재산세가 1~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부동산 수익은 높고 세금은 적기 때문에 개인 재산가의 천국이다. 상속세도 미국은 55%, 일본은 75%이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세금을 부담하면서까지 상속을 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차라리 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재단을 창설한다든지, 사회사업가의 명예라도 얻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은 종적이고 족보를 따지는 사회이며 부자중심의 가정을 이루는 문화이다. 반면에 서구는 횡적이고 부부 중심이며 당대 중심이다. 재산이 종적으로 세습되는 것은 농경사회, 절대빈곤사회, 의식주사회, 개별재사회의 가치관이다.
서구는 일찍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기 때문에 공동 서비스인 공공재 개념이 우리보다 빨리 정착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재산관을 형성하여 사회발전의 기반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도기에 있다. 기성세대는 아직 개인저축 중심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 후손들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재산관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는 과도기적 세대격차이다. 이제 우리도 개인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재산수익률 하락, 금리 하락, 보유과세 상승, 부동산 효율하락, 상속세와 증여세 비율 상승 등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보장제도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감안할 때 우리도 서구의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인의 지금과 같은 재산관은 우리가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서구와 같은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조류를 받아들여 선각자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박 승 한국은행 총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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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렇게 멋진 그래픽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