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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2009/10/31]
민간의술가 장병두翁

'의료법 위헌 논란' 불지핀 104세 민간의술가 장병두翁

病者들이 '화타(중국의 전설적 명의)'라 하는 그에게 법은 족쇄를 채웠다
40년 넘게 암 등 난치병 치료… "무면허" 범원서 유죄선고에
위헌소원 내 내달 憲裁 변론… 덕 본 변호사·교수들 탄원서
외조부·백두산 도사 2명에 14세부터 약 처방법 배워
아들이 현직 한의사임에도 “돈벌면 불행” 비방 안알려줘

예부터 백살을 '상수(上壽)'라 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아파트 안방에 정좌한 장병두(張炳斗)옹은 상수를 훌쩍 넘긴 104세다. 병자들은 그를 '화타(華陀)'라 하고 법은 그를 범법자(犯法者)로 규정했다. 그는 2006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의사나 한의사만 할 수 있는 진료 행위를 아무 면허도 없는 그가 해 병을 고쳐줬다는 것이다. 1, 2심에서 옹(翁)은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10월 장옹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3년이 넘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그는 헌법재판소에 위헌(違憲)소원을 냈다. 의료법 조항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11월 12일 헌재에서 이 사건 변론이 열린다.

1, 2심 법원은 그가 2601회에 걸쳐 무면허 진료를 한 게 잘못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직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맨 먼저 고발자의 누나가 탄원서를 냈다. 노인의 치료를 받은 후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뒤이어 대학교수, 변호사들이 대열에 가세했다. 하나같이 말기 암이나 심한 당뇨병을 앓고 있던 이들이다. 그 중엔 시인 김지하(金芝河)도 있다. 옥고(獄苦)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는데 장옹의 약을 먹고 다 나았다는 것이다.

장병두옹(翁)이 모처럼 두루마기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사는 아파트 앞에 어린이 놀이터로 만든 터널이 있다. 치료가 목적인가, 법이 목적인가.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장병두옹의 구술로 만든 책 '맘 놓고 병 고치게 해주세요'의 서문을 김지하가 썼다. '큰아들은 나의 발광(發狂)을 보고 극도의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작은아들도 내 발광에 놀라 뇌신경의 반이 마비됐다….' 기적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두 아이가 선생에 의해 완전히 치료됐다. 우리 식구 중 끝까지 치료가 안 되고 끝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던 아내가 어느 날 몇 시간을 몸부림치다 말했다. 나 이제 다 나았어요라고.' 소설가 박경리(朴景利)의 딸이자 김지하의 아내이며 토지문화관장인 박영주는 "그분은 가족의 은인"이라고 했다. 이 일이 짧게 소개됐는데도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만큼 세상에는 아픈 이들이 많다. 취재가 시작됐다.

①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장옹의 호적은 1916년으로 돼있다고 한다. 본인은 1906년생이라고 주장한다. 생년(生年)에 10년의 격차가 있었던 것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등창에 걸려 10년간 생사의 고비를 헤매 출생신고를 늦게 한 겁니다."

전북 임실군 지사면 안하리에서 4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생후 두달 만에 등창을 앓았다. 벼 훑은 것을 널어놓고 장작불을 때운 방안의 열기가 등으로 스며든 것이다. 당시 등창은 불치병으로 분류됐다. 등이 썩어들어간 그를 어머니는 업어 키웠다. 그의 등창을 치료해준 이는 궁중전의(宮中典醫)였던 외조부다. 당시 사람의 생골이 등창 치료 명약으로 꼽혔다. 그는 비방(秘方)이라고 했을 뿐 생골을 먹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왜 외조부는 그를 빨리 치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외조부는 진짜 궁중전의였을까.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책에 없다. 그도 말하지 않았다. 궁중전의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니 그렇다고 알았을 뿐"이라고 했다.

② 약초(藥草)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얻었을까.

지금 그가 시술하는 약 처방 지식을 준 이는 두 명이다. 한명은 외조부다. 또 한명은 백두산 도사(白頭山 道士) 임학(林學)선생이다. 외조부 부분은 그가 등창에서 완쾌된 지 4년 후인 열네살 때 시작된다.

"외조부를 찾아가 절을 하니 '내가 너를 살렸다. 너 이놈, 내가 그 비방을 가르쳐 줄 테니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된다. 남자는 등창에 죽고 여자는 발치(髮致)에 죽는다. 절대 남에게 이 비방을 알려주지 마라."

그의 아버지는 시골 훈장(訓長)이었다. 만일 집안이 평안했다면 그는 그때부터 의료인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형을 잃고 그 화병으로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면서 둘째인 그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됐다.

"내가 약초에 대해 알게 된 건 16~17세부터야. 산에 가면 배가 고프니 풀뿌리를 깨물어볼 거 아냐? 독한지, 단지, 순한지, 쓴지를 알게 되지. 나중에 혀가 아프고 헐기도 하지. 이렇게 약초를 한 3000가지 연구했어."

직접 먹어보고 독성(毒性)을 테스트하던 그는 개(犬)에게 약초를 먹였다. 지금으로 치면 동물실험인 셈이다. 그는 지금까지 개, 뱀, 구렁이를 수없이 죽여가며 실험했다고 한다. 거기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공해, 석유, 휘발유, 아스팔트, 시멘트, 가공식품, 항암제로 주변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된 상황에서 기존의 한의학에서 쓰는 약으로는 치료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동의보감도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임학과는 그의 아버지 생전에 인연이 있었다. 둔갑(遁甲)과 축지(縮地)에 능하다는 임학은 그를 이 산 저 산 데리고 다니며 약초 공부를 시켰다. '약을 많이 알아야 불쌍한 민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학에게 들은 것에는 호흡기와 신경줄에 좋은 도라지, 염증과 해열에 좋은 생지황, 우울증에 좋은 건지황 등이 있다. 바꽃의 덩이뿌리인 초오에 대해 임학은 독성이 매우 강하니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렸다고 한다.

임학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장옹의 구술(口述) 외에는 어떤 기록이나 일화도 없다. 그는 전주 부근 철로에서 열차에 다리가 끼어 사망했다고 한다. 사인은 축지법으로 급히 이동하다 위치를 잘못 측정했다는 것이다. 장옹은 외조부와 임학에게서 정확히 어느 정도 기간, 몇 종류의 약초에 대해 배웠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일설에는 전주 인근 산중(山中)에서 4년을 독학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노인의 기억은 확실치 않다.

한의사 자격증이나 침구사 자격증이 없는 부분을 판사가 물었을 때 장옹은 이렇게 답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 따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다 아는 것을 굳이 시험 칠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해방되니 내 나이 벌써 마흔을 넘었다." 뒤이어 이렇게도 질타했다. "일본 놈들이 활개치던 시절에도 아픈 사람을 많이 고쳐줬는데 이리 푸대접받지는 않았다. 내 나라에 살며 아픈 사람 고쳐줬다고 이렇게 사람을 잡아가니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의 법이랍니까? 나는 내가 고쳐주겠다고 광고하지도 않았소!" 이런 비유도 했다. "길 가던 손님이 목말라 죽겠으니 물 한 바가지 달라는데 물 한 바가지 떠줬다고 나라가 잡아갈 수 있어? 날 찾아온 사람들도 그런 심정이에요. 우선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 할 것 아닌가?"

③ 그의 관심 분야는 여러 가지였다

장병두옹이 평생 치료만 해온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봤다. 어렸을 때부터 물장수, 식당 허드렛일, 엿장수에 미꾸라지잡이까지 해봤다. 젊어서는 권투 프로모터 비슷한 일을 하며 중국 상해(上海)까지 오갔다. 그는 관상(觀相) 사주(四柱)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의 집에 기거하며 관상, 사주로 도움을 줬는데 그중에는 젊은 시절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출마 문제를 묻기에 '나가면 된다'고 했다. '몇살 때 대통령까지 지낼 수 있다'고도 했고 결국 적중했다. 내가 그 대가로 소원 세 가지를 들어달라고 하니 한 가지만 약속했는데 나중에 대통령이 된 뒤 내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며 의리 없음을 서운해했다.

젊은 시절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었으며 작은 기업을 할 때부터 신입사원 면접 시 관상을 보던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 창업주를 돕기도 했다. 그는 치료에 약과 함께 관상, 사주도 함께 쓴다. 본격적인 환자치료는 40년 정도 됐는데 완치된 숫자가 수만명은 족히 된다고 했다. "혹시 잘못돼 죽은 사람은 없느냐"는 질문에 "서른너댓 명 정도"라고 했다. 그는 "그들은 내 주의사항을 어겼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했다.

④ 문제는 효과다

장병두옹을 인터뷰하고 그가 구술한 책을 몇 회독(回讀)하면서 느낀 점은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령을 감안해도 신비로운 측면이 많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치료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그는 뒤늦게 아들을 하나 뒀는데 그는 지금 현역 한의사다. 장옹은 한의사 아들에게도 몇 가지를 제외하곤 자기의 비방을 전수하지 않는다. 이유는 "비방을 알아 분수 넘치게 돈을 많이 벌면 불행해진다"는 것이었다.

그의 비방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장옹은 그때마다 "평생 들여 얻은 지식을 왜 그들이 알려 하느냐"고 했다. 그는 몇몇 한의사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료로 병이 나았다는 환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자가 장옹의 집을 방문했을 때 중년의 남녀 한명이 동석해 있었다.

한명은 권탄준(權坦俊) 금강대 불교·복지학부 교수였다. 심한 종기를 앓았던 권 교수는 그의 치료로 완쾌했고 전주남중 교사였던 문계수씨도 '기적'을 본 뒤 그를 따르다 교직을 떠났다고 한다.

박태식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런 증언도 했다. "2001년 7월 아산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고 6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2004년 5월에는 소장과 대장 연결 부위의 장암과 복막암이 발견됐다. 당시 의사가 했다는 '인간이 할 일은 다했으니 기도를 하자'는 말을 전해들었다. 장폐색으로 고통당했고 음식을 조금도 먹을 수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멀쩡하게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옹을 위해 자발적으로 탄원서를 써준 이들은 의외로 지식인층이 절대다수였다. '증거' '과학'을 '실증(實證)'이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⑤폭리?

장병두옹은 33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휘경동에 집이 있는데 재개발공사가 시작돼 잠시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치료했으면 돈을 왕창 버셨을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급한 불이 꺼지면(치료가 끝나면) 연락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약재(藥材)를 진짜 최고로만 씁니다. 2006년 고발당했을 때 검찰이 내 약재를 통째로 압수해가 분석했는데 독성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가 정해놓은 약값은 상한선이 한달치 50만원이다. 많다면 많을 수 있고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는 이 금액은 개인의 경제력에 달렸을 것이어서 판단을 미룬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진찰법이다. 그는 맥을 짚지 않고 환자의 등부터 진찰하는데 그것을 맥활법(脈活法)이라고 한다. 맥활법은 신라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진찰법이라고 한다. 기자는 이번 취재에 병원과 한의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40대 중반과 동행했다. 장옹은 맥활법을 쓰더니 "12군데로 옮겨 다니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을 병이지만 치료가 어려운 건 아니다"고 했다. 환자는 장옹의 설명을 듣고 "정말 그런 것 같다"며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병이 완치됐는지를 확인하는 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장옹은 2006년 이후 진료를 하지 않고 있다.

⑥ 대체의학 인정이냐 현행 의료법 고수냐

이른바 '장병두 사건'은 황우석(黃禹錫) 교수 사태의 원조나 마찬가지다. 인터넷 공간에는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이 결성됐다. 그의 지지자들은 생명 치료를 왜 '자격증'에 의존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외국에서는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체의학이라는 범주로 허용해 연구와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반면 무분별하게 대체의학을 허용할 경우 진짜 돌팔이들이 대거 출현할 수 있다는 지적도 아직은 강하다. 양의(洋醫)나 한의(韓醫)쪽에서는 아직 장병두 옹 사건에 개입하고 있지 않지만 논쟁이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장옹이 고령(高齡)이어서 논의를 한사코 미룰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최방섭 한의사協 부회장 "총 잘 쏜다고 면허 없이 총 소지할 수 있나"

최방섭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의료면허는 만약에 생길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인 제도"라며 "치료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면허 없이 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의료 행위를 총기에 비유하면서 "총을 아무리 잘 쏜다고 해도 면허 없이는 총을 소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이 총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으며 많은 모방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장병두옹의 치료 효과를 많은 환자들이 본 것에 대해 그는 "의료행위는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피해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면허 없는 비제도권 의료행위를 통해 피해자가 생긴다면 어디다 하소연 하겠느냐"고 했다.

최 부회장은 "예전에도 시험을 통해 민간의술을 하는 사람들도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며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정을 밟지 않은 것을 이해 못하겠다"고도 했다.

최 부회장은 "장씨의 능력을 테스트해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지, 그것이 합당한지를 토론해 효과가 있다면 함께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대체의학 허용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그는 "의료인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전수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신만 그 방법을 이용해 치료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한의사들이 기득권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부인하며 "술 먹고 아무 사고 없이 운전을 해도 법적으로 금지하는 이유는 사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 김지하의 지병을 완치시킨 것으로 알려진 민간의술가 장병두옹이 26일 서울 자택에서 자신의 의술세계에 대해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2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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